[단편] 카지노의 왕
옛날 옛적이라기엔 너무 가까운 어느 시절, 용을 베어 황금을 취하는 사냥꾼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BTS라 불렀다. 하지만 그 이름을 기억하는 자는 없다. 다들 그를 카지노의 왕이라 불렀으니까. 카지노란 본디 '작은 집'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집에는 오래된 율법이 하나 있었다. 집은 결코 지지 않는다. 손님이 잠깐 따갈 순 있어도, 시간이 흐르면 모든 황금은 끝내 집이 거둬간다. 왕은 자신이 바로 그 집이라 믿었다. 다들 그에게 황금을 갖다 바쳤고, 그는 보물 더미 위에 앉아 있었으니까. 착각이었다. 늘 이기는 집은 그가 아니라, 그가 황금을 던져 넣던 구덩이였다. 왕 또한 결국 한 명의 손님이었을 뿐이고, 손님은 언젠가 반드시 진다.
이 땅의 사냥에는 규칙이 있었다. 맨땅에서는 용이 깨어나지 않는다. 구덩이에 황금을 던져 넣어야 했다. 던진 만큼 큰 용이 솟았고, 큰 용일수록 뱃속의 보물도 많았다. 칼이 심장을 가르면, 던진 것의 몇 배가 쏟아진다. 칼이 빗나가면, 구덩이가 입을 다물고 황금을 삼킨다. 왕은 이 사냥에 능했다. 칼이 울 때마다 용이 쓰러졌고, 그 자리에 황금이 호수처럼 고였다. 고이고 또 고여, 마침내 그는 170만이라는 보물 더미 위에 올라앉았다. 용을 베던 사냥꾼이, 끝내 스스로 용이 된 것이다.
처음부터 혼자는 아니었다. 곁에 두 명의 기사가 있었다. 표정 없는 황제와, 시간을 재촉하듯 떠들던 째깍. 셋은 피를 나눈 사냥조였다. 50만을 바쳐 깨운 용을 두 번 베었고, 65만짜리 거수를 갈랐고, 10만을 던져 부른 바람용까지 하늘에서 떨어뜨렸다. 그날 밤 황금은 폭우처럼 쏟아졌다. 째깍은 울부짖었고, 황제는 웃지 않았다. 황제는 다 가져도 웃지 않는 사내였다. 그게 그가 왕의 곁에 설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 뒤로 왕은 혼자 나서도 빈손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칼은 손에 들러붙은 듯 노래했다. 넘쳐나는 황금을 그는 손을 펴 흩뿌렸다. 굶주린 자에게 한 줌, 우는 자에게 두 줌, 발치에 엎드린 거지에게 또 한 줌. 흩뿌린 만큼 호수는 다시 차올랐다. 그래서 왕은 황금이 바닷물 같은 줄 알았다. 퍼내도 줄지 않고, 떠나가도 반드시 돌아오는. 그가 몰랐던 것은, 칼이 무뎌지는 밤이 온다는 사실이었다.
어느 평범한 밤, 칼이 용을 물지 못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칼날이 헛돌 때마다 왕의 눈 안쪽에서 무언가 빠지직 끊어졌다. 그는 50만을 던졌다. 용이 솟았다. 칼이 빗나갔다. 구덩이가 삼켰다. 멈췄어야 했다. 그는 다시 50만을 던졌다. 또 빗나갔다. 또 삼켜졌다. 100만이 한순간에 땅속으로 꺼졌다. 손에 남은 건 6만. 거지의 동냥 그릇에나 어울릴 마지막 한 줌이었다.
그리고 왕은, 미친 자만이 할 수 있는 짓을 했다. 남은 6만을 전부 구덩이에 쏟아부었다. 그러자 가장 늙고 거대한 장로드래곤이 솟구쳤다. 고작 6만에 깨어나서는 안 될 짐승이었다. 그는 마지막 힘으로 칼을 들었다. 칼이 심장을 갈랐다. 하늘이 갈라지고 황금이 쏟아졌다. 6만이 170만으로 부활해 돌아왔다. 왕은 그 밤, 신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었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착각이었다.
그날 이후 왕의 손은 떨렸다. 한 번 죽었다 살아난 손이 어찌 예전 같으랴. 황금은 야금야금 구덩이로 돌아갔고, 어느새 보물은 100만으로 주저앉았다. 그래도 100만이었다. 왕은 여전히 왕이었다. 이튿날, 황제가 찾아왔다. "100만짜리로 한 번 가자." 함께라면 한 번도 진 적 없던 황제였다. 왕은 망설이지 않았다. 남은 전부, 100만을 구덩이에 들이부었다. 일찍이 본 적 없는 거대한 용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황제도 곁에서 똑같이 황금을 던졌다. 두 자루의 칼이 동시에 용의 목을 향했다. 칼은 빗나갔다.
구덩이가 입을 다물었다. 100만이 있던 자리에 0이 남았다. 황제는 다 잃고도 웃지 않았다. 다만 한 줄을 남기고 사라졌다. "ㅋㅋ 다음에 또 가자." 다음은 없었다. 왕에게는 용 한 마리 부를 황금조차 남지 않았으니까.
빈털터리가 되어서야 왕은 깨달았다. 자신이 흩뿌린 황금은 바닷물이 아니었다. 모래 위에 부은 물이었다. 한 줌 받아 간 자도, 두 줌 받아 간 자도, 발치에 엎드렸던 거지조차, 단 한 톨도 돌려보내지 않았다. 부자의 적선은 빚이 아니었고, 왕의 자비는 이자를 낳지 않았다. 그는 가장 비싼 수업료를 내고 그 사실을 배웠다.
집은 결국 이겼다. 자신이 곧 집이라 믿었던 사내에게서, 집은 마지막 한 톨까지 거두어 갔다. 그래서 그는 지금 무료급식소에 있다. 한때 그가 측은히 내려다보며 동냥을 던지던 바로 그 자리. 100짜리, 200짜리 동전을 구덩이에 던져 쥐새끼만 한 용을 깨우는 거지들 틈바구니. 옆자리 거지가 100짜리 용을 잡고 환호할 때, 왕은 손에 쥔 마지막 80을 만지작거린다. 황금을 거두기만 하던 집의 왕이, 이제는 거저 밥을 내어주는 집의 문간에서 공짜 밥을 얻어먹는다. 세상에는 모든 것을 앗아가는 집도 있고, 가진 것 없는 자에게 거저 내어주는 집도 있다는 걸. 그는 거지가 되어서야 알았다.
사람들은 아직도 그를 카지노의 왕이라 부른다. 비웃음 섞인 호칭이라는 걸 그도 안다. 보물 위에 똬리를 틀던 용은 사라지고, 다시 동전이나 쫓는 굶주린 사냥꾼만 남았다. 그래도 왕은 오늘도 80을 구덩이에 던진다. 베면 160이 되고, 또 베면 320이 되고. 그렇게 한 마리씩 쌓다 보면, 언젠가 다시 170만의 그 밤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6만이 170만이 되어 돌아왔던, 신이 자신을 사랑한다 믿었던 그 밤으로. 신은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 왕도 안다. 알면서도, 그는 또 황금을 던지고, 칼을 들어 올린다.
댓글 2
내공냠냠
잘 봤습니다. 거지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