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한 번 더

yujin|2026-06-01 17:12|조회 36|✏️ 수정됨 2026-06-02 02:57

러와랜드는 밤이 되면 숨을 쉬는 것처럼 불빛이 살아난다. 천장은 너무 높아서 하늘이 눌려 내려온 것 같고, 바닥 카펫은 발소리를 삼켜 사람이 스스로를 잃기 좋게 만든다. 내가 처음 그곳에 들어섰을 때, 자신이 어떤 문을 열었는지 몰랐다. 나는 그저 피곤했고, 월급이 밀린 달이었고, 집에 갈 용기가 없었다.

승과 패. 반반. 그게 전부였다.

기계 이름은 "강타" 였다. 화면 위 숫자는 차갑게 깜빡였고, 승패는 동전 던지기처럼 단순했다. 타이밍에 맞춰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됐다. 나는 주머니에 남은 10000RC 를 넣었다. 손끝이 떨렸지만, 그건 두려움이 아니라 오랫동안 잊었던 것 —기대— 에 가까웠다.

한 번.

승.

화면이 밝아졌다. 20000RC.

그 순간 세상은 조용해졌다. 아니, 조용해진 게 아니라, 그동안 들리지 않던 소리만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심장 박동, 에어컨 바람, 멀리서 웃는 누군가의 입술. 나는 웃지 않았다. 웃을 이유가 없었으니까. 나는 그저 숫자를 다시 봤다. 두 배. 하루 일의 가치가, 버튼 한 번에.

이건 운이야,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다음엔 안 될 거야.

그 말은 거짓말이 되기 전에, 이미 몸은 다시 앞으로 기울어 있었다.

도박은 중독이라고들 한다. 나는 그 말을 싫어했다. 중독은 병이고, 병은 치료할 수 있다. 하지만 러와랜드의 "강타" 는 더 정직했다. 모든 이들에게 희망을 주지 않는다. 50% 만 준다. 그것도 매번, 조건 없이.

첫 승 이후 나는 집에 가지 않았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다시 강타 앞에 섰다. 딴 돈의 반인 10000RC 를 넣었다. 패. 꽝. 10000RC 를 더 넣었다. 패. 또 꽝.

한 번만 더.

그 말은 기도가 아니었다. 습관이 되기 전의 주문이었다.

그날 밤 나는 배팅액을 40000RC 까지 올렸다가, 새벽 무렵 0이 되었다. 지갑은 비었고, 계좌 잔액과 대출 한도는 닿아버렸고, 머릿속만 맑았다. 맑다는 건 깨끗하다는 뜻이 아니라,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그래도 나는 일어나지 못했다. 의자 등받이가 등을 받쳐 주었고, 화면 속 숫자는 다음 판의 희생자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며칠 뒤 나는 다시 러와랜드에 있었다. 빌린 돈, 연락 끊긴 친구, 회사에서 보낸 경고 문자. 그 모든 것은 입구를 지날 때 종이처럼 가벼워졌다. 안에서는 무게가 다르게 느껴진다. 죄책감은 밖에 두고 들어오라고, 러와랜드는 그렇게 설계되어 있었다.

"강타" 는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그 자리에서 승과 패, 여전히 반반.

나는 이제 패턴을 찾으려 했다. 방금 세 번 연속 꽝이면 다음은 올 것 같았고, 패 다음엔 승이 올 것 같았고, 느낌이 온 만큼 카운트를 세고 버튼을 누르면 운이 따라올 것 같았다. 하지만 "강타" 는 기억하지 않았다. 이전 판도, 나의 눈물도, 너덜너덜해진 마음에 난 상처도. 그냥 기계였다.

나는 점점 더 크게 걸었다. 작게 이기는 것은 이제 만족스럽지 않았다. 한 번에 크게 따야 빚을 갚을 수 있을 것 같았고, 크게 따야 지금까지 잃은 시간이 의미 있을 것 같았다. 논리는 늘 그렇게 자신을 설득한다. 도박사의 논리는 세상에서 가장 정교한 거짓말쟁이다.

한 달이 지나자 나의 이름은 직원들 사이에서 단골이 되었다. 웃는 얼굴로 음료를 권하는 사람도 있었고, 조용히 한쪽 구석을 가리키는 사람도 있었다. 친절과 경고는 같은 얼굴의 다른 각도였다.

나는 알고 있었다. 이 길의 끝이 어디인지.

파산. 관계 단절. 신용 붕괴. 필요하면 더 나쁜 것들까지. 얼마든지 손댈 수 있으리라.

알면서도 멈추지 못했다. 멈추는 순간, 지금까지 잃은 것이 진짜로 잃은 것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의 실패는 훗날의 성공을 위한 수많은 시행착오 중 하나일 뿐이다. 비싼 수업료를 지불했다고 나는 그렇게 굳게 믿었다.

도박은 미래를 팔지 않는다. 과거를 되돌리겠다는 환상을 판다. 나는 환상을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느 날 나는 거울 같은 화면 속 자신을 봤다. 눈 밑이 어둡고, 입술이 갈라져 있었고, 웃는 법을 잊은 얼굴이었다. 그때 비로소 공포가 왔다. 공포는 승패가 아니라, 자신이 더 이상 자신이 아닌 것에서 왔다.

나는 러와랜드를 나가려 했다. 발걸음은 무거웠고, 출구 표지판은 너무나도 멀게만 보였다. 한 걸음, 두 걸음— 그때 화면 한켠에서 "강타" 가 나를 불렀다. 깜빡임 하나. 소리 없는 소리.

한 번만 더 하면, 오늘은 그만둘 수 있어.

나는 멈춰섰다. 뒤돌아봤다. 손이 먼저 움직였다. 머리는 아니었다. 머리는 이미 너무 많은 말을 들었고, 너무 많은 약속을 깨뜨렸다.

5000RC. 남은 전부에 가까웠다.

"지금."

패.

나는 웃었다. 비참하게, 조용히. 웃음은 기쁨이 아니라 인정에 가까웠다. 이제 끝이구나, 하는 인정.

그런데도 발은 다시 강타 앞에 섰다.

파멸은 드라마틱하지 않다. 폭발도, 비명도 없다. 그냥 숫자가 줄고, 사람이 줄고, 남는 것은 빈 의자와 차가운 화면뿐이다.

나의 마지막 밤, 러와랜드는 평소와 같았다. 화려하고, 잔인하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나는 더 이상 얼마를 잃었는지 세지 않았다. 잃을 것도 거의 없었다. 카드는 정지, 집은 멀어졌고, 전화는 울리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강타" 앞에 앉아 있었다.

화면에는 마지막으로 넣을 수 있는 액수가 떠 있었다. 작은 숫자. 웃기게도, 처음 10000RC 를 넣었을 때와 비슷한 크기—아니, 그때보다 더 적었다.

손가락이 버튼 위에 멈췄다.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야.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수백 번, 수천 번 말해 왔던 문장.

밖에서는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러와랜드 밖 세상은 여전히 빚과 현실이 있었지만, 안에서는 오직 한 판만이 존재했다. 나는 파멸을 알고 있었다. 눈앞에, 숫자로, 내일 아침의 빈 주머니로. 그럼에도 입술이, 손가락이 움직였다.

소리 나지 않게, 혼자만 듣는 말로.

“한 번 더.”

버튼이 눌렸다.

화면이 깜빡였다.

러와랜드는 밤이 되면 숨을 쉬는 것처럼 불빛이 살아난다. 천장은 너무 높아서 하늘이 눌려 내려온 것 같고, 바닥 카펫은 발소리를 삼켜 사람이 스스로를 잃기 좋게 만든다.

나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번 더를 기다리고 있다.

댓글 2

북부대공06-01 17:18

"그에게 희망을 줘."

황제06-02 02:45

샤코를 해